조선시대 심질의 성리학적 이해와 대처
- Alternative Title
- Neo-Confucian Understanding and Coping of Simjil in the Joseon Dynasty
- Abstract
- 조선에서는 자연현상과 더불어 사람의 생로병사를 성리학적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고 인식하였다. 이 때문에 병을 다루는 의원은 성리학적 소양을 가져야 했으며, 성리학자는 의학적 소양을 지니고 있다고 여겼다.
조선은 정신질환을 심질이라고 불렀으며, 심질은 모든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리학에서 심(心)에는 신(神)이 깃들며, 신은 사람의 감정인 칠정(七情)을 거느린다. 심과 신은 사람의 정신활동을 주재하는 것으로 심신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활동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조선에서 심질에 대한 병리론은 철저하게 성리학적 관념을 통해 이루어졌다. 심질이라는 명칭에서부터 정신질환에 대한 성리학적인 관념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심질은 조선이 들어서면서 사료에서 급격하게 등장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본 연구는 조선이 정신질환을 성리학적인 관점으로 심질을 이해했으며, 이 관점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선이 심질의 치료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치료로 인식했던 방법은 심신수양이었다. 마음 수양을 통해 마음을 고요히 만들어야 했다. 마음을 고요히 만드는 방법은 마음을 돌아보고 환자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욕심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즉 욕심으로 인해 심질이 발병한 것으로 이는 심질의 원인과 책임을 환자에게 지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념 아래 심질을 앓는 관리는 스스로의 병을 부끄럽다 여겼으며, 체직의 사유가 되는 병임이 확인된다.
한편 조선은 성리학 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성리학적인 관념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이미 무속과 불교가 백성들의 종교로 뿌리 깊게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성리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기 위해서는 성리학을 통한 실질적인 이득을 쥐여줄 필요가 있었다.
성리학 홍보의 방편으로 심질의 치료가 이용되었다. 조선은 심질이 단지할고를 통해서 심질이 치료된 사례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또한 단지할고를 행한 이를 효자로서 표창하고 물질적인 보상을 제공했다. 이러한 홍보는 큰 성과를 얻어 조선 중기 이후에는 인육이 심질의 치료 약이라는 소문이 돌고 납치와 살인까지 일어났음이 확인된다.
조선은 관리뿐 아니라 백성들까지 교육하여 성리학적 질서 아래에 편제하는 것이 지치(至治)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심질환자에 대해서도 성리학적인 관념을 통해 다스리고자 하였다. 조선은 심질뿐 아니라 신체질환에 대해서도 측은지심에 따라 곡식과 옷, 약재를 지급해주었다. 또한 스스로 구제가 어려운 이들은 군역과 잡역 등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자립구제와 가족부양이 원칙이었으므로 환자를 부양하는데 부양가족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심질은 병증에 따라 폭력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이러한 증상은 조선 또한 인지하고 있었음이 실록과 의서를 통해 확인된다. 그러나 삼강의 도리 안에서 마땅한 방한 제도도 없이 폭력적인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부양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질에 의한 살인사건이 늘어났으며, 사람을 죽이고 심질을 앓고 있다고 자백하여 감형을 받으려는 이들이 늘었다. 심질과 관련한 살인사건이 빈번해지며 심질이라는 병 자체에 대한 시선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한편 조선 후기 호적을 살펴보면 심질이 신체질환에 비해 매우 적은 비율로 나타남이 확인된다. 이는 심질을 앓아도 눈에 띄는 증상이 아니라면 면역자로 인정받기 어려웠음을 의미한다. 결국 조선은 병인을 기재하는 데에 신체질환을 중심으로 둔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균역법의 시행으로 부족해진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각종 세금이 늘어났다. 지방에 부과된 할당량은 마을 공동체가 각각 채워나가야 했다. 그러나 심질 환자는 건강한 이들보다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채우지 못한 할당량은 그들의 이웃이 채워야 했다. 자신의 할당량도 채우기 힘든 상황에서 마을 공동체에 있어 심질 환자는 부담스럽고 성가신 존재가 되어갔다.
성리학을 통해 심질을 바라보았던 시선은 성리학을 내재화한 백성들의 마음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였던 사회적 시스템은 조선 후기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심질을 보는 관점만이 현대까지 이어져 정신질환을 보는 인식하는 것에 있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Author(s)
- 정유경
- Issued Date
- 2023
- Awarded Date
- 2023-08
- Type
- Dissertation
- URI
- https://oak.ulsan.ac.kr/handle/2021.oak/12837
http://ulsan.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686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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