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의 불교 유학 습합현상 연구 : 경주향교의 사례
- Abstract
- 본 연구는 경주향교에서의 문묘제례를 통하여 유학에 교육적 함의를 밝히고, 유학과 불교의 습합현상이 어떻게 조화롭게 일어났는지를 상세하게 밝히는데 연구의 목적을 둔다. 조선조 국가의 관학(官學)인 성균관(成均館)과 향교(鄕校)는 500년 동안 유학(儒學)을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교과교육과정으로서 강학(講學)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예(禮)의 실제와 동일한 제의례(祭儀禮)인 문묘(文廟)의 기능이 가정이 아닌 학교에서 이루어졌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제 의례인 문묘의 의례가 학교에서 이루어짐이 교육학적 관점에서 어떤 함의(含意)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유학은 고려 말에 주자학(朱子學)이 들어오면서부터 전파되었다는 설이 보편화 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삼국통일 전에 김춘추(金春秋)가 당에 사신으로 가서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아울러 당나라의 교육기관을 참관하고 귀국했다. 이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유학은 이미 통일신라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 신문왕(神文王) 2년(682)에 국학이 설립된 후 성덕왕 16년(717)에 김수충 대감이 당에서 공자(孔子)와 공문십철(孔門十哲) 및 72제자의 화상도(畫像圖)을 가지고 와서 국학에 봉안하면서부터 강학과 문묘가 함께 이루어졌다. 그것을 증명하는 장소가 경주향교이다.
현재의 경주향교는 국학이 있었던 구역으로 신라의 국학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신라는 왕권강화의 전제 조건으로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끌어들였다. 불교 수용 이전에 유학은 이미 들어와 있었으므로 유학을 정치적인 국가통치 이념으로 삼고, 불교는 백성을 하나로 화합하는 호국의 도구로 삼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중앙집권체재를 강화할 수 있었다. 경주향교에서 불교와 유학이 서로 충돌 없이 조화로운 습합현상이 일어났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주제어: 성균관, 향교, 제의례, 주자학, 국학, 강학, 봉안, 문묘, 유학, 불교, 습합현상.
- Author(s)
- 박경자
- Issued Date
- 2021
- Awarded Date
- 2021-02
- Type
- Dissertation
- URI
- https://oak.ulsan.ac.kr/handle/2021.oak/5567
http://ulsan.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37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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