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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秦始皇)의 리더십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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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native Title
사마천의 사기를 중심으로
Abstract
리더십에 대한 논문들이 주로 리더십 이론들과 조직에서의 활용범위․효용가치 등을 중심으로 상당히 많이 게재되어 있다. 이에 반해 역사적인 인물의 리더십에 대한 논문은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다. 아마도 한 인물에 대해 리더십을 중심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리더십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과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에 대한 관심으로 진시황을 대상으로 리더십 연구 논문을 작성했다.
‘리더십’이란 미국을 중심으로 1900년대부터 생겨난 개념으로, 정의하는 학자들의 숫자만큼 다양하다. 1900년대에는 지배와 통치라는 개념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1960년대에 이르러 ‘영향’을 미치는 것에 비중을 두게 되어 학자들 간에 어느 정도의 의견일치를 형성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리더와 성원들 간의 상호작용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이다.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진성 리더십, 심김의 리더십, 수퍼 리더십 등 새로운 접근방법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리더십 이론의 흐름으로 봤을 때 리더십을 한 마디로 명백하게 개념지을 수는 없다.
진시황의 리더십을 살펴보기 위한 여러 자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마천(司馬遷)이 기록한 사기(史記)에 비교적 방대한 양이 서술되어 있다. 사기는 중국의 최초 군주로 추측되는 황제(黃帝)로부터 사마천이 살던 시기까지 기록한 통사(通史)로서 현장실사를 통해 깊이 있는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황제(皇帝)는 실존인물이 아니고 신화적인 인물이다.
진(秦)나라 진시황은 성씨는 ‘영’이고 이름은 ‘정’이다. 조국인 진나라가 아닌 조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9세가 되어서야 진나라로 올 수 있었다.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부정(不貞)하고 타락한 생모 조희와 섭정을 하고 있는 여불위의 기세에 밀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22세가 되어 여불위의 섭정에서 벗
어나 친정(親政)을 통해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고 여불위를 물리치고 독립적으로 왕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지속적인 통일정책의 추진으로 중국 최초의 통일 대업을 이루는 군주가 되었다.
리더십 이론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진시황의 리더십을 역량연구 이론과 경로-목표 이론, 그리고 변혁적 리더십 이론에 연계시킬 수 있다. 역량연구 이론은 특성이론에서 한 단계 발전된 이론으로서, 리더의 능력을 후천적으로 개발함으로서 리더의 역할을 확장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에 반해 특성이론은 리더의 자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자질을 기본요소로 하고 있어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본국이 아닌 타국에서 태어난 진시황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숨죽이면서도 자기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결재 서류를 하루에 120근 이상 처리하지 않으면 식음을 전폐했다는 것으로 보아서 자신이 처리해야 할 범위를 설정하고 완수했으리라 본다. 동생 성교의 난을 일사불란하게 평정한 것으로 보아 문제해결 역량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중앙집권제, 화폐․문자․도량형 통일을 통해 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사회판단역량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진시황의 리더십을 경로-목표 이론과 연계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목표를 설정했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모든 제도와 사상을 배격하고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상벌제도를 운영하였다. 또한 외국 인재에도 문호를 개방하여 인재운영의 장애물을 제거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시황은 자신과 구성원들 모두의 동기유발수준과 도덕수준을 높이면서 연결관계를 창조해가는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구성원에 대한 영향력을 최대화하고 동기부여와 창의성을 자극함과 동시에 개별적 상황에 맞게 대처하였던 것이다. 수리전문가 정국이 첩자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영감적 동기부여를 통해 저수지 공사를 마무리하게 하였다. 더구나 저수지 이름도 ‘정국거’라 불렀다.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한 위료의 경우에도 국위라는 군사책임 직책을 부여함으로서 개별적 배려를 통한 인사운영을 하였다.
진시황이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여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였지만 통일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리더십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린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세 번의 암살위기를 겪음으로서 인간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서 분서갱유(焚書坑儒), 아방궁 축조 공사 등으로 진나라는 쇠락의 길을 겪게 된다.
현대 조직에 있어서 리더십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진시황의 리더십을 통해 문제해결 역량이나 사회판단 역량 그리고 변혁적 자세는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다. 사기를 중심으로 하는 진시황의 리더십 연구를 통해 리더십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향후 깊이 있는 진시황의 리더십 연구를 기대한다.
Author(s)
임헌택
Issued Date
2021
Awarded Date
2021-08
Type
Dissertation
Keyword
리더십역량연구변혁적 리더십진시황의 리더십
URI
https://oak.ulsan.ac.kr/handle/2021.oak/6028
http://ulsan.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503435
Alternative Author(s)
IM HEON TAEK
Affiliation
울산대학교
Department
정책대학원 공공정책전공
Advisor
편상훈
Degree
Master
Publisher
울산대학교 정책대학원 공공정책전공
Language
kor
Rights
울산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Appears in Collections:
Law and Social Science > Public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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