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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宝塚] 재일조선인 공동체의 변화와 지역사회 재정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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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이후, 자의로 또는 타의로 일본으로 이주했던 조선인 중에는 해방이 된 이후에도 고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일본에 남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과 그 후손들은 오늘날 재일조선인으로 불리고 있다. 식민지 시기의 이주로부터 시작하면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이제 100여 년이 지났다. 재일조선인은 거주국인 일본에서는 소수민족으로, 고국인 한국에서는 한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겨졌지만, 한일양국의 공식 역사서술에서는 배제되면서 오랫동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연구자들은 재일조선인을 ‘차별 받으면서 동시에 저항하는 소수자’라는 관점에서 파악했다. 이에 따라 재일조선인이 많이 거주하면서 차별과 저항의 스토리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컸던 도쿄, 오사카, 교토 등의 대도시 중심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구성된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보통의 재일조선인에게 공통의 기억이나 경험이 될 수는 없었다. 재일조선인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 그들의 생활에 매우 많은 변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 재일조선인의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과정에서 ‘지역’에 주목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연구는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 공동체의 변화와 지역사회 재정착운동에 대한 것이다. 식민지 시기 다카라즈카로 이주한 조선인은 자신들을 둘러싼 내외부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자기의 위치와 역할에 다른 인식을 하게 되었다. 재일조선인은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안에 대응하면서 스스로가 역사 기록의 주체가 되어 유무형의 역사를 남겼다. 본 연구에서는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의 생활세계와 네트워크, 기억과 실천, 다원적 경험에 주목했다.
1920년 무코가와 개수공사를 계기로 다카라즈카로 이주한 조선인은 해방 이후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의 기원이 되었다. 이들은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위에 있었지만, 일본에서의 정주화 진전에 따라 영주의 의사를 가지기도 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은 욘코바를 비롯해, 코하마, 나마제 등 공사장 인근에 밀집해서 거주했다. 거주지에서 퇴거될 때에도 집단퇴거였기 때문에 집단거주지는 계속 유지되었다. 식민지 시기 이주는 체인이주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조선인 사이에 이미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욘코바 조선인의 경우 동향출신자들이 많아서 그 네트워크는 매우 촘촘했다. 그러나 다카라즈카 조선인은 사회운동의 역량이 약했기 때문에 내선융화단체처럼 일제의 행정적 지도를 받은 후에야 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고, 노동조합이나 동업자 조직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런 양상은 해방 후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 사회 형성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해방 이후 재일조선인은 일본사회의 외국인이 되면서 지역사회의 현안으로부터 유리되었고, 고국과 일시적으로 왕래가 끊어지면서 섬처럼 고립되었다. 다카라즈카의 재일조선인은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재일조선인 마을에 그대로 거주했다. 이들은 조련지부(총련지부)와 민단지부를 결성하고, 각 조직의 민족학교로 조선학교와 한국소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했다. 두 조직은 교류를 단절한 채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했다. 민단지부는 공산화교육을 막는 것을 민족교육이라고 생각했고, 총련지부는 일본의 차별에 맞서 조선학교를 지킴으로서 민족교육을 수호할 수 있다고 여겼다. 각 조직과 학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억과 역사는 서로 공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70~80년대 다카라즈카에서는 신경환 사건, 니시다가와 홍수피해 보상문제, 고령자연금 특별급부금 지급 문제 등 재일조선인과 관련된 현안이 발생했다. 여기에 대응하면서 개인적으로 사회운동 역량을 축적하는 사람도 있었고, 조직 차원에서 다카라즈카의 일본인 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현안에 대응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했다. 다카라즈카의 여러 시민단체들은 재일조선인과 다카라즈카 행정당국을 매개해주는 동시에 재일조선인 조직 사이의 연결 고리의 역할을 했다. 민단지부와 총련지부 사이에도 처음으로 조직 차원의 교류관계가 만들어졌다. 이 때의 교류를 계기로 다카라즈카 민족마츠리가 개최되었고, 이후 재일조선인이 직접 기획한 민족축제로 원코리아 다카라즈카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런 축제를 통해 다카라즈카 지역사회에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으나, 이 과정에서 재일조선인 내부의 차이가 제거되고 매우 정형화된 재일조선인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카라즈카 시가 만든 다문화공생 정책은 대부분 뉴커머 외국인이 중심이었고, 올드커머인 재일조선인은 자신들의 역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카라즈카와 오사카의 재일조선인, 일본인이 중심이 되어 외국인시민문화교류협회를 결성하고,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문화를 지역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전개했다. 또 식민지시기 다카라즈카 지역개발 공사에서 희생된 조선인을 위한 추도비 건립운동을 추진했다. 추도비는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의 존재에 대한 변호인 동시에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시도이다.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은 일본 주민들과 함께 지역개발을 주도해 온 사람들로, 지역주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면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개발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뉴커머가 배제되는 것은, 지역에서 새롭게 형성된 공동체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카라즈카의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은 지역사회의 역사문화를 공유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고, 이것은 모두 재정착운동의 결과물이다.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은 공식역사에서 소외되어 왔지만 지역사회에서의 다양한 주체들과 관계를 맺고 현안에 대응하면서 자기 역사를 만들어왔다. 지역사회의 사안에 따라, 각 주체의 경험과 입장에 따라 대립하고 협력하고, 갈등하고 교류하는 등 관계의 양상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재일조선인 간의 관계도 그러했고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에서의 이런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관계를 고려할 때 재일조선인을 차별받고 저항하는 소수자로만 정의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사안에 따라 일본인, 조선인과 적극적으로 대립, 협력의 관계를 만들면서 자기 역사를 구축해 온 존재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일본사회의 소수자로서, 피차별민족으로서 역사 속에 자신들을 위치시키던 재일조선인은 이제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으로서 자기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정주지에서 보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은 재정착운동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귀화를 하거나 폐쇄적인 민족공동체를 유지하는 대신, 실천적 행위를 통해 지역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의 단위를 넘어서서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국가 사이에서 외교·문화적 가교 역할을 담당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재일조선인은, 혼종적 존재로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지역사회 안에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고 다카라즈카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Author(s)
정계향
Issued Date
2019
Awarded Date
2019-08
Type
Dissertation
Keyword
재일조선인다카라즈카지역사회민족공동체재정착운동
URI
https://oak.ulsan.ac.kr/handle/2021.oak/6598
http://ulsan.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225248
Alternative Author(s)
Jung, Gyehyang
Affiliation
울산대학교
Department
일반대학원 한국사한국문화학과
Advisor
허영란
Degree
Doctor
Publisher
울산대학교 일반대학원 한국사한국문화학과
Language
kor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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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History & Cultural Studies > 2.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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