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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문천상의 충절에 대한 논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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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고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문천상(文天祥)을 어떠한 방식으로 기렸는가를 시기별로 개관하고 조선 후기에 그의 충절에 대해 이루어진 논의의 특징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천상은 남송(南宋)의 재상으로 원나라가 송나라를 점령할 때 끝까지 항거하다 죽어 만고에 그 충절이 빛난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의 충절은 조선 초부터 조선 말까지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왕조를 위해 절의를 지킨 정몽주, 전란 중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경명,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 등을 기릴 때 어김없이 문천상이 충절의 표상으로 등장하였다.
조선 전기까지 문천상의 충절에 대한 언급 내지 논의는 단편적인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조선 후기 연행(燕行) 과정에서 직접 문천상 사당에 방문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문천상 사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동시에 그의 충절에 대한 논의도 보다 풍성해지게 되었다.
유몽인은 몽유록 양식을 빌려 충절이 천명(天命)보다 우선하는 가치임을 역설하는가 하면, 박지원과 김직연은 문천상이 순절하지 않았더라면 더 큰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하여 문천상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또 이덕무 등과 같이 문천상의 기개나 정취를 개인적으로 흠모하던 예도 흔히 발견된다. 이처럼 문천상에 대한 담론은 조선 후기로 올수록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uthor(s)
안순태
Issued Date
2021
Type
Article
Keyword
문천상절의충절정몽주고경명최익현연행록문승상사유몽인박지원김직연이덕무몽유록문명의식
DOI
10.17056/donam.2021.39..53
URI
https://oak.ulsan.ac.kr/handle/2021.oak/9482
https://ulsan-primo.hosted.exlibrisgroup.com/primo-explore/fulldisplay?docid=TN_cdi_nrf_kci_oai_kci_go_kr_ARTI_9837791&context=PC&vid=ULSAN&lang=ko_KR&search_scope=default_scope&adaptor=primo_central_multiple_fe&tab=default_tab&query=any,contains,%EC%A1%B0%EC%84%A0%EC%A1%B0%20%EB%AC%B8%EC%B2%9C%EC%83%81%EC%9D%98%20%EC%B6%A9%EC%A0%88%EC%97%90%20%EB%8C%80%ED%95%9C%20%EB%85%BC%EC%9D%98%20%EC%97%B0%EA%B5%AC&offset=0&pcAvailability=true
Publisher
돈암어문학 (돈암)
Location
대한민국
Language
한국어
ISSN
1229-2117
Citation Volume
39
Citation Number
1
Citation Start Page
35
Citation End Page
79
Appears in Collections:
Humanities >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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