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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서기석의 교육사적 의의 :신라 청년의 유학 학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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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native Title
The Significance of the Oath Stone Scriptured in the Year of Imsin in Relation to History of Education
Abstract
본 논문은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의 기록을 바탕으로, 신라청년들의 유학학습의 의의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임신서기석의 역사적 사실을 기존의 화랑도 정신과 관련한 해석과 달리, 최치원(崔致遠, 857~?)의 ‘풍류도’(風流道)의 한 부분을 이루는 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였 다. 임신서기석은 1934년 5월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 터 뒤 언덕 에서 발견되었는데, 신라 청년의 실천궁행에 관한 서약의 문구를 기록한 소형의 자연석으로 일종의 금석문서이다. 이 비석의 한문은 우리말식의 이두향찰식이다. 신라의 두 청년은 3년이라는 일정한 기간을 정하고 학 문에 전념하여 성과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을 서약한다. 최치원은 ‘난랑비’(鸞郎碑)와 ‘사산비’(四山碑) 등에서, 우리민족이 태초부터 지니 고 있는 ‘현묘’한 ‘도’를 ‘풍류도’라 하였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유교와 불교와 도교가 종합되어 중국의 정신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중 국에서 발견한 이러한 사상적 종합을 신라에서는 ‘풍류도’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최치원은 풍류도에 유불도 3교가 포함되어 있다 고 말한다. 풍류도는 3교 그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풍류도의 본체와 형상, 그리고 효용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임신서기석이 만들어질 당시에도, 이미 신라인은 유교와 불교와 도교를 종합하여 ‘풍류도’의 정신에 따라 삶을 영위하였으며, 유학은 신 라 청년의 학습에 이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라 청년들의 유학 학습의 의의를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개념 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그 배후에 ‘풍류도’의 영향이 있음을 보이려고 노력하였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지리적으로도 불리하였고 발전이 늦었 던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고 삼국 통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고유 사상인 ‘풍류도’를 바탕 으로 한 유학의 실천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유학의 ‘인’(仁)은 ‘사욕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위인’(爲仁)은 ‘인’의 정의와 ‘인’의 실현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을 실현하는 두 가지 방법적 원리인 ‘충’과 ‘서’가 실현되는 사회가 바로 ‘인’이 실현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孔子)에 의하면 인을 실천하는 것은 나에게서 비롯되 어 그것이 남에게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인’을 행하는 것은 나에게 갖 추어져 있는 것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충’(忠)을 타인 에게 행하는 것은 ‘서’(恕)이다. ‘성인’이란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고 이를 현실 속에서 직접 실현시켜 나가는 사람이다. 유학 공부의 궁극적인 목 표는 성인의 덕성을 함양하고, 그 덕성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고자 함이 다. 이 유학의 핵심 개념인 ‘충’과 ‘서’의 개념은 「대학」에서 말하는 ‘수 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즉 ‘수기’와 ‘치인’의 개념에 잘 나타나있다. 「대학」의 8조목은 ‘수신’을 기준으로 하여 ‘제가’, ‘치 국’, ‘평천하’는 ‘치인’으로, ‘정심’, ‘성의’, ‘격물’, ‘치지’는 ‘수기’로 나 눌 수 있다. 여기서 ‘수기’는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을 가리키며, ‘치인’ 은 남을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과 남을 다스리는 것이 별개의 것일 수 없다. ‘치자’는 남을 다 스리는 일을 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야 비로소 남을 다스리는 일 또한 제대로 할 수 있다 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다면, ‘치인’은 ‘수기’의 사회적 표현인 것이다. 임신서기석을 통하여 신라청년들이 유학 학습의 내용을 전한지 1400 여년이 지났다. 현대적 관점에서도 신라의 청년들이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것을 다짐하고 유학의 교과서를 공부하고자 맹세한 것은 되새겨봄 직하다. 국가를 향한 신라청년의 유학 학습 여정은 당시의 신 흥 학문인 유학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국가를 향한 그들 나름 의 간절한 열망이었던 것이다. 임신서기석에 새겨진 교육사적 의의는 현 대에도 계승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풍류도’ 를 연구한다는 것은 유교와 불교와 도교라는 외래 관념이 신라 사회의 고유 관념과 ‘습합’(習合)하는 과정을 연구한다는 것을 뜻한다. ‘습합’은 ‘준비’, ‘토착화’, ‘독자적 성장’의 과정을 거쳐서 동화된다. 이러한 과정 끝에 신라 사회에 적용된 것이 최치원의 풍류도라 할 수 있겠다. 주제어 : 임신서기석, 풍류도, 유학, 충(忠), 서(恕), 수기, 치인
Author(s)
소미준
Issued Date
2024
Awarded Date
2024-02
Type
Dissertation
Keyword
임신서기석풍류도유학수기치인
URI
https://oak.ulsan.ac.kr/handle/2021.oak/12909
http://ulsan.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737754
Alternative Author(s)
So, Mi-Jun
Affiliation
울산대학교
Department
교육대학원 인성교육및교과교육
Advisor
박종덕
Degree
Master
Publisher
울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인성교육및교과교육
Language
kor
Rights
울산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Appears in Collections:
Education > Character Education and Subject-matter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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